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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6.11 14:23 수정 2019.06.11 14:52
날카로운 통찰과 통통 튀는 생동감으로 가득차 있는 2030 칼럼 '해시태그 #청년'이 매주 화요일 <오마이뉴스> 독자를 찾아갑니다[편집자말]
  

'새벽배송'으로 유명한 업체 마켓컬리 광고 중 일부 ⓒ 마켓컬리


배달을 하다가 버스에 새겨진 전지현씨를 만났다. 새벽배송업체 광고였다. '하다하다 새벽에 배송을 하네?'라고 무심코 생각하고 넘어갔다. 우리 집은 사람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소리가 다 들리는 빌라인데, 쿵소리가 나서 시계를 봤더니 새벽 4시 30분이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을 위해 문을 열고 복도에서 발견한 상자에는 전지현씨가 광고한 택배상자가 놓여있었다.

하루는 밤 11시에 초인종이 울려서 깜짝 놀라 인터폰을 봤더니 택배노동자였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책이 도착한 것이다. 당일배송을 바란 적 없었지만,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그날 밤이라도 물건이 배달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됐다. 소비자들에게 만족감을 주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했으니, 혁신과 진보를 이룬 것일까?

장사하는 사람들이야 언제나 소비자의 만족과 비위를 위해 살아야 했지만, 그것이 유일한 기준이 아닌 시장도 있었다. 바로 노동력을 사고 파는 노동시장이다. 아무런 규제 없이 노동자라는 상품을 구입한 사장들은 하루 12시간, 16시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용하는 것은 물론, 남녀노소 모두를 사용했다.

다행히도 노동력이라는 상품은 말을 하는 인간이었고 소비자와 사장님의 만족이 전부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파업을 벌였으며, 8시간 노동과 최저임금 등 각종 규제를 만들어냈다. 이것은 종종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자, 새로운 혁신을 위해 철폐되어야 할 적폐로 규정됐다. 지금도 주 52시간과 강성노조 때문에 매출액이 떨어지고, 중소기업이 어려움에 처해있다는 경제지 기사들이 수두룩하다.
 
공유경제의 근간은 공유노동자

법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비정규직과 간접고용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오던 사장님들은 최근에 노동력 상품에 '사장님'이라는 새로운 상품명을 붙이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덕분에 노동법의 보호를 할 필요가 없는 노동력이 등장했고, 자본주의 초기처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과거에는 한 명의 사장이 한 명의 노동자를 배타적이고 독점적으로 사용했다면, 사장이 된 노동자는 누구도 소유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동력 상품을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받는 모두가 사용자가 된 것이다. 공유경제의 원천은 '공유노동력'이자 '공유사용자'인 것이다. 배달이 늦으면 배달업체가 아니라 배달기사에게 욕을 할 수 있고, 사장님의 명찰을 단 노동자에게 별점으로 평가를 할 수 있다.

이 싸움이 극명하게 벌어진 건 택시-타다를 둘러싼 논쟁에서다. 택시에 대한 그동안의 불만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났고, 소비자들의 욕구와 욕망이 사안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됐다.

'과거의 질서들은 소비자의 이름으로 준엄하게 심판되어야 하며, 소비자들이 원한다면 새벽배송이든, 30분 배달제이든 새로운 산업도 만들어져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소비자본주의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승합차 공유서비스 '타다 : TADA' ⓒ tadatada.com

 
새벽 노동자가 넘쳐나는 세상은 끔찍하다

오해를 막기 위해 미리 말하지만 이글은 소비자를 욕하거나 윤리적인 소비를 하자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무한한 소비자의 편리는 공동체 전체를 망친다. 새벽에 택시 잡는 건 당연히 힘들어야 한다. 새벽에도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가 넘쳐나는 건 끔찍하다. 야간 노동으로 노동자들의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물론, 가족 지인들과 보내는 시간들도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심야버스와 24시간 돌아가는 편의점은 곧 그 시간까지 깨어서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자의 또 다른 이름은 노동자다.

최근 서울시는 새벽에 강남으로 청소하는 노동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버스노선을 늘린다고 발표했다. 고 노회찬 의원의 '6411번 버스 연설'로 유명해진 코스인데, 서울시는 여기에 노회찬 버스의 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용자들의 편리만을 생각한다면 이 대책이 진보와 혁신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 발 짝 떨어져서 보면, 청소노동자들이 새벽에도 쉽게 이동할 수 있는 버스를 공급하는 것은, 새벽에 일을 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공고히 하는 것이다. 시장논리가 아니라 우리공동체구성원들이 더불어 살아간다는 민주주의의 원칙으로 새벽청소를 금지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을까?
 
소비자의 편리라는 명분보다 중요한 건 국민의 보호 

정치에서 '국민의 뜻'만큼 강력한 말도 없다. 하지만 국민의 한사람인 나와 정치인이 이야기하는 국민의 뜻이 일치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의 뜻'은 다수 국민들의 총의 따위가 아니다. 각자의 정치세력이 자신들의 지지자들을 동원하고, 정치적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민심은 재규정되고 재배치된다.

순수한 민심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정치적 갈등 속에서 재조정되고 국민적 합의라는 이름의 새로운 사회적 규칙을 만들어낸다. 소비자의 뜻도 마찬가지다. 소비자의 욕구와 욕망역시 항상 선택적으로 이용된다. 최근 벌어지는 혁신논쟁에서 소비자들의 여론은 새로운 산업을 열어젖히는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는 무한할 줄 만 알았던 절대 권력자를 쓰러뜨리고 새로운 정치적 질서를 만들었다. 반면 무한축적의 논리로 운영되는 시장에선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지난세월 경제성장과 소비자편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가. 시장의 질서가 민주주의로 옮겨오는 것이 가능했다면, 민주주의의 원칙이 시장의 질서로 옮겨가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것이 혁신을 가로막는 러다이트일까? 인간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를 파괴하는 것을 야만으로 생각하는 공동체가 혁신일리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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